2011/04/12 02:07
[신입사원] 차라리 학교보다 나았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예능2011/04/12 02:07
"지금 여기 모여있는 모든 분들의 꿈들 중에 소중하지 않은 꿈이 어디 있겠습니까? ..."
꿈의 동일한 무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한 여인의 마지막 발언은 결국엔 눈물로 이어졌다. 자신도 가볍지 않은 꿈의 무게를 짊어지고 그 무대에 섰는데, 탈락을 앞두게 된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처음으로 장래희망을 써내는 초등학생의 꿈도, 백발이 무성한 노인의 꿈도 모두 가치있고 소중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 앞에 가혹한 저울질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의 꿈은 이미 너무나도 상처 받기 쉬운 위치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더 냉혹한 현실을 보고 있다. 일년의 반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카이스트 학생 4명의 자살 소식은 우리의 꿈이 처한 또 다른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너의 꿈은 뭐니?'라는 질문보다 '넌 몇등이니?'라는 질문을 더 많이 주고 받는 현실. 그것은 '니 꿈이 무엇이든 간에 경쟁자들을 이겨야해'라는 의미를 내포한 세뇌에 가깝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전거 타는법을 가르칠 때, 달리는 것부터 가르치지는 않는다. 브레이크를 잡는 법과 넘어졌을 때 자전거를 다시 세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의 가르침이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카이스트 학생들은 브레이크를 잡는 방법도,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강제로 경륜경기에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1등이었고, 또 1등이어야 했던 그들이 20살이 넘어서도 그 경쟁을 반복해야 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경쟁에서 밀려나고 좌절하고 있을 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용기를 내고 일어나는 법을 가르쳤어야 했다.
<신입사원>에서 두 종류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탈락으로 인한 슬픔의 눈물이고, 또 하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다는 데에 따른 성취의 눈물이다. 5000대 1에 도전한다고 해서 승자가 단 한명은 아니었다. 제각기 도전에 대한 의미를 찾았고 또 다른 도전을 기약하며 떠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이스트는 교육현장임에도 실패에 징벌을 가했고, <신입사원>은 채용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임에도 실패를 감싸주고자 노력했다. 아이러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