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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 모여있는 모든 분들의 꿈들 중에 소중하지 않은 꿈이 어디 있겠습니까? ..." 
 꿈의 동일한 무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한 여인의 마지막 발언은 결국엔 눈물로 이어졌다. 자신도 가볍지 않은 꿈의 무게를 짊어지고 그 무대에 섰는데, 탈락을 앞두게 된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처음으로 장래희망을 써내는 초등학생의 꿈도, 백발이 무성한 노인의 꿈도 모두 가치있고 소중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 앞에 가혹한 저울질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의 꿈은 이미 너무나도 상처 받기 쉬운 위치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더 냉혹한 현실을 보고 있다. 일년의 반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카이스트 학생 4명의 자살 소식은 우리의 꿈이 처한 또 다른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너의 꿈은 뭐니?'라는 질문보다 '넌 몇등이니?'라는 질문을 더 많이 주고 받는 현실. 그것은 '니 꿈이 무엇이든 간에 경쟁자들을 이겨야해'라는 의미를 내포한 세뇌에 가깝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전거 타는법을 가르칠 때, 달리는 것부터 가르치지는 않는다. 브레이크를 잡는 법과 넘어졌을 때 자전거를 다시 세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의 가르침이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카이스트 학생들은 브레이크를 잡는 방법도,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강제로 경륜경기에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1등이었고, 또 1등이어야 했던 그들이 20살이 넘어서도 그 경쟁을 반복해야 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경쟁에서 밀려나고 좌절하고 있을 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용기를 내고 일어나는 법을 가르쳤어야 했다.
 <신입사원>에서 두 종류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탈락으로 인한 슬픔의 눈물이고, 또 하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다는 데에 따른 성취의 눈물이다. 5000대 1에 도전한다고 해서 승자가 단 한명은 아니었다. 제각기 도전에 대한 의미를 찾았고 또 다른 도전을 기약하며 떠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이스트는 교육현장임에도 실패에 징벌을 가했고, <신입사원>은 채용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임에도 실패를 감싸주고자 노력했다. 아이러니다.

Posted by 파도
 



  김건모의 탈락이 발표되고 일순간 가수들을 비롯해 제작진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누군가는 탈락해야 함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상황이 되고 나니 그 충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 온 것이다. 무대 위를 지켜보는 김영희PD도 근심어린 눈빛이었다.

 '나는 가수다의 취지가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데에 있지 않고, 훌륭한 가수가 좀 더 훌륭한 무대에서 좀 더 훌륭한 노래를 시청자 여러분께 보여드리는데 있기 때문에...' - 김영희PD

 만약 향후 결과발표 때마다 오늘과 같은 모습이 반복된다면 '훌륭한 무대'라는 말을 듣기는 힘들 것이다. 1위가 미안해질 수 밖에 없고 그 어느 누구도 환호 할 수 없는 무대라면 그 위에는 영광은 없고 비극만이 남는다. 과연 그런 무대가 누구나가 서고 싶어하는 훌륭한 무대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자발적인 재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원래 기획했던 것들을 많이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기획의도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꼴찌 탈락'이라는 시스템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영광이 존재하는 무대가 되려면 꼴찌가 아닌 1위가 나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청중평가 1위일 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청중평가와 가수 7인의 평가가 일치했을 때, 즉 모두에게 인정받은 무대를 보였을 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가수들이 일정 수가 되었을 때, 그 가수들만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 주는 형태로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발적인 재도전'의 기회는 1위를 못한 가수 전원에게 주어져야한다. '재도전 포기'는 꼴찌가 되어서, 혹은 다른 이유에서 자연스럽게 퇴장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는 소재 자체가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더 좋은 무대를 더 많이 만나게 되길 바란다. 
Posted by 파도

 두 영혼이 한 몸에서 죽어간다.


 '연인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해 삶을 포기한 채 무생물처럼 살아가는 여성'
 송이경(이요원)은 첫 등장부터 무채색이다. 강도가 들이댄 칼 마저도 의미를 잃어버리는 그런 삶. 길가에 서있는 전봇대와 다를바 없다. 
그녀의 영혼은 몸이 죽음을 향해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어둠으로 치닫는다. 그녀의 기억과 방 안 상자 속에 감추어진 물건들은 그녀에게도 행복한 삶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한 남자를 너무나도 사랑했고, 자신의 일에도 충실했던 사람이었으리라. 좋았던 수많은 기억이 사라지고 연인의 죽음만이 삶을 채워버린 그녀는 하루하루 죽어간다. 

 여기 또 다른 한 쪽, 살고자하는 영혼이 있다. 신지현(남규리)이 살아야 할 의미는 충분하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들, 그리고 가족이 있다. 결혼을 앞두었던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이승에서의 생활이었다. 하지만 당장 그녀가 극복해야 할 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과 거짓의 문제다.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그녀는 믿었던 사랑이 거짓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녀가 살고자 할수록 감추어져 있던 거짓들이 그녀를 옥죄여 온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진실 앞에 그녀 역시 죽어간다.

 어린아이는 작은 장난감을 빼앗겨도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 장난감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대신 죽는 그 날까지 사랑이라는 무형의 것에 집착한다. 보이지도 않는 사랑을 잃었을 때 인간은 단순히 울음으로 끝나지 않고 깊은 나락으로 빠져버린다. 49일은 '상실'앞에서 무너지는 인간, 그 중에서도 '사랑의 상실' 앞에 한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는 드라마다.


 하지만 두 영혼은 여전히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운명의 주도권을 여전히 쥐고 있다는 의미이고, 변화의 단서이다. 이것은 곧 어둠에서 밝음으로 옮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두 운명이 이제 막 연결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Posted by 파도